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해회사 거품 사태 (문단 편집) == 영향과 의의 == * '''영국 최초의 의원내각제 총리 탄생''' 재정 전문가 [[로버트 월폴]]은 [[조지 1세]]의 명으로 사태 수습에 나섰다. 물론 월폴은 남해회사 설립에 관여한 휘그당 출신이라 이 사태를 엄정하게 처리하면 정권이 '''토리당에게 넘어갈까봐''' 되도록 덮는 쪽으로 사태를 해결했다. 하지만 어쨌든 월폴에 의해서 경제적인 문제는 어느 정도 혼란이 수습되었고 조지 1세는 이런 월폴을 신뢰하여 월폴에게 정권을 맡기게 되었다. 남해회사 사건을 처리한 공으로 월폴은 [[1742년]]까지 장기집권했고 오늘날 [[의원내각제]] 하 영국에서 월폴은 초대 수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 '''공인회계사 제도와 회계감사 업무의 시작''' 찰리 스넬이 남해회사의 회계를 담당하던 브릿지 상회의 회계장부를 조사하면서 "브릿지 상회의 회계장부에 대한 소견"이라는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는데 이것이 세계 최초의 회계감사 보고서가 되었다. 이후 남해회사와 같은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주식회사들은 반드시 제3자를 통해 회계기록 평가를 의무화하여 영국에서 최초로 [[공인회계사]]와 회계감사의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라 이후에도 이런 일이 안 일어났던 건 아니지만. * '''용어 거품(버블)의 유행''' 남해회사의 영어 명칭은 사우스 시(South Sea)이며 이 회사가 발행한 주식이 급등하자 세간에서는 '남해에 거품이 일었다'는 [[언어유희]]가 유행했는데 바로 이 사태에서 '''시장의 과열'''을 거품(버블)이라고 부르는 용례가 탄생하였다. 경제 거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 자체는 이전에도 [[네덜란드 튤립 투기 파동]]이나 향신료, 차 무역 등 여럿 존재했지만 이 사건으로 영국 정부의 공문서에서 '버블'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SC Bubble.png|width=100%]]}}}|| ||<:>{{{-1 남해회사 거품을 풍자한 카드, 1720년.}}}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